김기태 고문님 7월 인사글입니다. 상세보기
제목 | 김기태 고문님 7월 인사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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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사무국 | 작성일 | 2018-07-05 | 조회수 | 3829 |
북을 주다
지난 며칠을 기다린 것이 있습니다. 세상을 희롱하듯 당당한 능소화가 보고 싶어서입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 보니 ‘이제 7월이야’ 하듯 활짝 피었습니다.
계절이 단오를 넘어 서면 온전히 여름 속에 들어갑니다. 일기예보는 장마와 태풍, 열대야와 폭염 등 예사롭지 않은 날씨를 경고하기 일쑤입니다. 무더위를 따라오는 전염성질병과 풍수해를 대비하는 것이 여름나기의 기본입니다. 단오를 통해 터득하는 삶은 이웃의 존재, 공동체의 발견이 아닐까 합니다.
더울 때는 덥게 살고 추울 때는 춥게 살아야 건강하다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慾이라는 것이 적당한 정도를 맞추어 살기가 쉽지 않고, 그러니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살기도 어렵습니다. 앉으면 눕고 싶은 게으른 생명본능은 ‘견물생심’ 정도의 고상한 포장으로 넘겨야 할 판입니다.
하루하루 길이를 늘려가던 낮이 문득 멈추어 서면 씨 뿌리던 일손이 김매기나 북주기로 바뀌게 됩니다. 요즘에는 비닐로 덮고 지지대를 세워주는 방법으로 대신하지만 어릴 때 어른들의 일상을 회상해보면 참으로 고단한 노동이었습니다.
비가 와서 패이고 뿌리가 드러나면 넘어지기도 하고 뜨거운 햇볕에 성장이 더디기도 한 작물을 주위바닥의 흙을 긁어모아 높여주는 작업을 북을 준다고 합니다. 단순히 김매기와는 다른 밭의 관리 방법이 북 주기입니다.
세상사는 이치가 쓰러질 듯 힘들어 할 때 토닥토닥 덮어주는 이웃 덕분에 다시 생기를 얻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때때로 북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돌아보니 늘 그렇게 살아 온 것 같기도 합니다.
어릴 때 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쓸려나가는 갱변 밭이 있었습니다. 불 지나간 자리는 있어도 물 지나간 자리는 없다더라 하시며 허망하게 바라보시던 모습하며, 장마에 쓰러진 고추밭골에 북주며 단내 나는 노동을 등목으로 식히던 그분들을 떠올리는 것은 게으름의 변명을 그만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능소화처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여름나기 하십시오. 고맙습니다.
2018. 7. 잉화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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