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시루 같은 공동체를 위하여 상세보기
제목 | 콩나물시루 같은 공동체를 위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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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기태 | 작성일 | 2015-01-20 | 조회수 | 4213 |
콩나물시루 같은 공동체를 위하여
오늘 아침에 콩나물국을 먹었습니다.
집에서 직접 기른 콩나물로 끓인 국입니다.
겨울철 방 한쪽에는 늘 콩나물시루가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마트에 가서 사 먹을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건조한 방안 공기의 습기조절용이면서 겨울철 건강식품의 대명사이지요.
몇 해 전 전남공동체 방문 때 사온 옹기시루가 이제서 제구실을 한 셈입니다. 텃밭에 나물콩을 심어서 아이들과 꼭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몇 해인지 모르겠습니다. 콩나물시루 먼저 장만하고 이듬해 콩씨앗을 심으려 했더니 봄철 놓치고, 다시 기다려 심는데까지 두해 넘게 걸린 듯 합니다. 콩을 심어 수확을 하고보니 시루를 받칠 받침대가 필요하구나 싶어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또 일 년. 이런 저런 핑계로 한번도 길러보지 못하고 구석자리에 있던 옹기시루에 콩나물이 자라고 아침밥상에 국으로 등장한 날입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어머니가 콩을 물에 담가 놓으셨습니다.
뭐 하시려고요? 콩나물 길러 보려고 그런다.
어디다가 기르시게요? 비닐봉지에라도 기르면 되지.
준비도 없이 왠 콩나물을 기르냐고 핀잔을 하고나서야 시루를 찾아다가 비닐봉지에 든 콩을 안치고 물을 주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밑 빠진 독이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 콩나물시루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부질없는 짓이라거나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경계하는 말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시대 어린 영혼들의 아픔은 어른들의 밑 빠진 독 같은 채울 수 없는 욕심이 근원입니다. 지금도 뉴스에는 어린이집이 메인입니다. 온 나라가 술렁이는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애써 외면하면서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2008년 12월13일. 그날의 창립선언문을 다시 읽습니다.
「삼라만상은 유기적인 관계망으로 얽혀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의 근본이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땅이 만들고 아이는 동네가 키운다는 믿음을 살려야 합니다. 사람과 땅이 하나라는 주춧돌을 새로이 자리 놓아야 합니다. 교육과 농업은 한 사회의 근간이라 할 수 있으며 불가분의 관계망 속에 들어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건강한 먹거리로 밥상을 차리고 생태적 유아교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망을 가르치고 나와 남의 존엄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생태공동체를 통해 뒤틀어진 유아교육을 살리고 아이들의 망가진 건강과 영혼을 살리고 우리 농업을 살리는 조화와 균형의 살림운동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생태유아공동체를 창립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유기농산물을 먹이는 일을 비롯하여,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도시ㆍ농촌 교류활동을 통해 농촌과 자연생태계를 살리는 일, 생태유아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천, 생태유아교육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아이들을 올바르고 풍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신명을 다하고, 이 땅에 생태적 문명의 푸른 싹을 틔우는 일에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물론 이런 뜻과 포부들이 한꺼번에 다 쉬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패인 곳은 다독거리고 막힌 곳은 뚫어가면서, 생태적 문명의 새 물줄기가 내일을 향해 도도히 흐르기를 소망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섭리에 따라 순환하여 지․수․화․풍이 조화로운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세상,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지는 세상을 만드는 소박한 걸음이 되길 기원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구조적 모순과 갈등이 많이 있습니다. 중부권생태공동체를 통해 더 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생태교육을 통해 나누고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나눔과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유아교육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 진정 관심을 가져야 하는 희생과 봉사, 나눔과 연대의 모습이 생태교육, 생태공동체라는 믿음을 함께 그리고 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물이 고여 썩고 있는 독에 구멍을 내는 일이 우리의 일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서 새로운 생명을 기르는 일이 생태공동체라는 믿음을 다시 새깁니다. 밑 빠진 독에 욕심으로는 채울 수 없지만 협동으로 나눔으로 생명의 싹을 가득 채울 수 있음을 늙은 노모가 일깨워주셨습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복은 내 노력의 댓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협력으로 누군가의 덕으로 얻은 것입니다. 내가 먹은 음식만 3대를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어놓은 덕이 3대를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얻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나누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은 듯하여, 그리하여 많은 분들께 시름과 아픔을 남긴 것에 아쉬움과 미안함을 어찌할 바 있겠습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떨림과 설레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 1.
잉화달천 김기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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